도마뱀 꼬리처럼 … 생체시계 되돌려 신체 재생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①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김은기 인하대 교수, 생명공학 전공 ekkim@inha.ac.kr | 제310호 | 201302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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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원리가 인체에도 적용된다면 팔의 근육세포를 떼어내 파킨슨병을 치료할 새로운 뇌세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체세포의 한 종류인 근육세포가 또 다른 종류의 체세포인 뇌세포로 바꿀 수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근육세포가 수정란에 해당하는 원시 상태의 세포로 갔다가 다시 뇌세포로 변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직접 뇌세포로 변하는 방법이다. 첫째 방법은 2012년 영국의 존 거든 박사와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역분화 기술이다. 둘째 방법은 2011년 네이처지에 소개된 직접분화(Direct Conversion) 방법이다.
윤리 논란 잠재우고 면역장애 해결
성인의 근육세포는 60회의 정해진 세포분열을 끝마치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역분화 기술을 활용하면 이런 근육세포가 생체시간을 거꾸로 해서, 즉 분화를 거슬러 원래의 원시 상태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분화 기술로 태어난 원시 상태의 줄기세포, 즉 유도만능줄기세포(iPSC·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는 배아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의 뒤를 이은 제3의 줄기세포로 각광받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의 시동을 걸었던 배아줄기세포는 난자에서 얻는다. 4~5일 경과된 수정란 내부의 배아줄기세포는 분화능력이 가장 뛰어나다. 하지만 난자에서 얻어야 하는 윤리적 문제, 그리고 분화가 가장 잘되는 장점의 반대급부인 암 유발 위험성 때문에 임상 적용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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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는 21세기의 불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생체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줄기세포는 치료 목적으로 활용 가능하다. 신체의 특정 부분, 예를 들면 손상된 척추 부위에 주입하면 손상 부위를 대체하는 직접 효과와 주위 세포들을 잘 자라게 하는 간접 효과가 있다. 자기 몸에서 나온 줄기세포를 사용해 치료를 하는 소위 ‘맞춤형 세포치료제’가 이미 임상단계에 들어서 있다. 주로 신경이 절단된 척추환자, 연골세포가 필요한 관절염 환자, 그리고 혈액세포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다.
줄기세포가 필요한 둘째 분야는 특정질환세포로 변화시켜 질병 치료의 모델세포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10대 유전질환의 하나인 파킨슨병의 경우 뇌 중간 흑질 부위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생성 세포가 죽어가는 현상으로 아직 원인이 분명치 않다. 이 환자의 해당 부위 뇌세포를 역분화시켜 원시 상태의 줄기세포로 만든 다음 분화 과정을 거치면서 왜 이 세포가 파킨슨 세포로 변화하는지를 연구할 수 있다. 또한 이 세포를 대상으로 신약 후보 물질을 테스트할 수도 있다. <위 사진>
셋째 응용 분야는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췌장·신장 같은 장기를 외부에서 만들어서 이식할 수 있다. 현재 신장이식의 경우 15%만이 장기이식을 받고 있을 뿐이다. 유전적으로 제작된 미니 돼지 등을 이용한 동물장기도 있지만 면역 거부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장기 형태를 만들기 위해선 줄기세포와 골격물질을 섞어서 프린팅 기술로 3차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자기 몸의 세포를 사용할 수 있어 장기 기증의 가장 큰 장벽인 면역적합성을 해결할 수 있다.
생명의 블랙박스 '분화'의 문 열리나
중국 시안(西安)에 묻힌 진시황은 불로초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현대과학의 iPSC를 알았더라면 지금쯤 지하에서 너무 일찍 태어났음을 원통해할 것이다. iPSC를 만드는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보통의 체세포, 예를 들면 피부세포에 네 가지 생체유래 물질을 첨가해서 키우면 이것이 iPSC로 바뀐다. 최근에는 4개가 3개, 2개, 드디어는 1개 물질만을 첨가해도 원시줄기세포로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생체시간을 한 개의 물질로 되돌릴 수 있다니 세포가 생각보다 유연하고 역동적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지금 생명의 블랙박스인 ‘분화’의 문을 열고 있다. 생명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경이로워하는 부분은 바로 분화 과정이다. 즉 하나의 수정란에서 같은 유전자를 가진 세포로 분열, 그 수를 늘리더니 어느 순간부터 3배엽으로 나뉘고 각각 피부세포, 심장근육세포, 간세포로 각각 다른 운명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런 정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정보를 정확히 안다면 우리는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정확하게 분화시킬 수 있다. 역분화 줄기세포인 iPSC를 만드는 데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사용한 4개의 생체물질은 ‘유전자발현인자’라고 불리는 일종의 유전자 스위치 신호물질이다. 이 4개를 만드는 4개의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실어서 세포로 집어넣었더니 4개의 생성된 신호물질 덕분에 세포가 원시 상태로 리셋이 된 것이다. 이런 분화를 조절하는 부분을 ‘호메오박스’라고 부른다. 어떤 순서로 유전자들이 발현될 것인지가 여기에서 정해진다. 돌연변이나 기형이 생기는 것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파리의 경우 호메오박스를 바꿀 경우 다리 부분에 눈이 달린 기형의 파리가 생성됐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세포는 유전자 종류가 모두 같다. 다만 유전자 스위치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케라틴 단백질 부분이 켜지면 모발세포가 된다. 도파민 스위치가 켜지면 뇌세포가 된다. 따라서 유전자를 움직이는 마스터 스위치를 조절할 수 있다면 모든 세포의 스위치를 끈 원시 상태로 돌려서 iPSC를 만들 수 있다. 또한 iPSC의 도파민 스위치를 켜서 뇌 속에 넣는다면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생명체의 시작이 바로 팔·다리가 생기는 분화의 과정이라면 역분화 기술은 원하는 대로 세포를 분화시키는,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역분화 iPSC는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뛰어난 분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암세포로 변할 위험성이 더 크다. 또한 사용하는 4개의 전사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들이 모두 마스터 스위치 격이어서 암 발생과 밀접한 데다 유전자를 옮기는 과정에 바이러스도 사용돼 부작용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최근에는 원시 상태까지 돌리지 않고 바로 원하는 세포로 변화시키는 소위 ‘직접분화’ 방법이 개발됐다. 원시 상태까지 변화시키지 않고 바로 원하는 세포로 간다면 iPSC가 갖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전 세계에선 지금 3000여 건의 줄기세포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데 한국은 그중 10%를 차지하고 있다. 바야흐로 줄기세포가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은 실험실 연구 결과를 상용화하는 데 어느 나라보다 앞서가는 강점이 있다. 역분화 기술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영국의 거든 박사는 이미 1962년에 개구리의 체세포를 난자에 넣어서 올챙이를 만들었다. 생체시계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보인 후 50년 만에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 경쟁에서 탄탄한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얘기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국제SCI급 논문 110편과 40여 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바이오문화컨텐츠연구소를 설립해 저술 활동을 펼쳐왔다.
<출처: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9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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