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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수필 모음, 출판도서 목록/(5)개인 발간수필모음

<2>한밤 중의 시외버스

by 바이오스토리 2013. 3. 15.

밤이 제법 늦은 시간. 종점 근처에서 서울로 가는 마지막 시외버스를 서둘러 올랐다. 바깥의 찬 공기에 얼어있던 나에게 차안의 히터 온기는 반가웠다. 최근에 나온 차인지 깨끗한 실내의 차안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죽 늘어선 통로를 지나 맨 뒷좌석에 홀로 자리를 잡았다.

 

뒷좌석은 약간 높아서 탁 트인 시야를 나는 좋아했고 더구나 야간의 고속도로버스는 운치가 있었다. 퇴근시간에만 타던 버스여서 그런지 자리 가득하던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텅 빈 버스는 마치 한밤중의 빈 강의실처럼 적막하다. 멀리 앞에 보이는 운전석은 칸막이로 가려서 운전사의 뒷머리만 보인다. 늘 틀어놓던 라디오마저 오늘따라 조용해서 낮은 조명의 버스 안은 아늑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오늘은 이렇게 기분 좋은 여행을 하려는가보다.

 

매일 많은 사람들로 빈틈없이 빼곡한 자리에다 떠들어대던 휴대전화소리, 게다가 차안의 라디오는 늘 유행가소리로 소란스러웠던 것에 비하면 오늘은 그 동안의 소음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하려는 가 보다. 더구나 이제 한 정거장만 지나면 고속도로이고 그리되면 오늘의 이 퇴근길은 한밤의 조용한 드라이브가 되리라는 기대에 의자를 뒤로 젖혔다.


고속도로 입구 정류장에서 두 사람의 여인이 올라섰다.

 

자매인 것 같은 두 사람은 운전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 곧 떠날 것 갔던 버스는 급히 섰고 곧이어 운전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개는 버스에 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운전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은 조금 나이 든 중년 여인이 뭐라고 답변하는 소리에 다시 털이 날려서 안 된다는 운전사의 볼 멘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중년의 여인은 코트 안에 무언가를 감싸고 있었고 유심히 보니 아주 조그만 강아지가 보였다.  한 주먹이나 될까한 강아지는 털이 전혀 없는 종류인 듯 빨간 살갗이 그대로 보였다.  다시 한두 번의 실랑이가 오가더니 결국 다른 조금 젊은 여인이 강아지를 앉고 내렸고 버스는 곧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나는 세웠던 의자를 다시 뒤로 젖혔다.


한밤중의 고속도로는 시야에 보이는 것은 쭉 뻗은 도로 뿐 모든 것이 조용했다. 한참의 정적을 깬 것은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 중년 여인이 참았던 숨을 내뱉듯 운전사에게 쏘았다. 사람도 없는 차안에 손바닥만한 강아지를 못 태워 이 추운 겨울에 밖으로 내 모냐는 것이다. 마치 어린 손자가 내팽개쳐진 것 같이 분에 겨워하고 있었다.  여인과 거의 같은 나이가 되어 보이는 운전사는 복날 개장 집에 있어야 할 개가 사람 품에 있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듯 연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말다툼은 계속되었고 쉴만하면 다시 시작하는 그들의 말다툼은 그렇게 종점까지 한 밤중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버스의 빈 좌석이 앞에 일렬로 늘어서있고 그 앞에 운전사 자리와 더불어 있는 약간의 공간, 그리고 검은 막처럼 가려진 유리창 배경. 이 공간에 앉아있는 운전사와 중년의 여인. 이 모습은 문득 대학시절 보았던 연극무대를 생각나게 하였다. 대학친구B가 자기 여자친구가 연극공연을 하는 데 빈 자리를 채워야 된다고 반 강제로 데려갔던 대학연극 공연장. 시험기간에다 늦은 공연시간, 그리고 별로 알려지지 않은 대학연극동아리의 공연장은 역시 텅텅 비어있었고 나는 맨 뒷줄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낮은 조명의 무대에서는 중년의 부부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텅 빈 객석으로 들리는 남자와 여자의 끊임없는 언쟁. 두 사람은 각자의 귀를 막고 큰 소리로 상대방에게 떠들어댔다.  무채색의 건조하고 삭막한 분위기의 무대에서 두 주인공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계속하며 끊임없는 싸움을 내내 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결국 좋은 분위기의 연극을 기대하고 왔던 나는 실망스런 화풀이를 애꿎은 친구B에게 소주 몇 잔으로 주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고속도로 내내 목청 높여 싸우던 두 사람을 두고 버스에서 내린 나는 B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소주나 한잔 하자고. 그리고 고자질 하리라, 빈 버스에서 내내 싸우던 두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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