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출판된 서적 (자연에서 발견한 위대한 아이디어 39)의 처음 일부입니다.
한강 산책길에 꼬마들이 몰려있다. 개미와 사마귀의 싸움 구경 때문이다. 덩치 큰 사마귀를 상대하기 위해 개미가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이보다 더 처절한 싸움이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박테리아와 천적인 바이러스 간의 싸움이다. 그 싸움을 구경하던 두 여성 과학자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대박을 넘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 하고 있다. 그 싸움을 들여다보자.
박테리아와 천적 바이러스는 치고받는다
박테리아는 100마리를 한 줄로 세워놔도 머리카락 굵기도 안 되는 그야말로 미물(微物)이다. 이놈들은 지구의 블랙 물질이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구생태계의 가장 밑바닥을 받치고 있다. 내 손에도, 내 장 속에도, 나무에도, 땅속에도, 그리고 바닷속에도 있다. 바닷물 한 방울에는 약 백만 마리 정도의 박테리아가 있다. 이놈들이 없으면 지구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다. 산속에 버려진 나무를 이놈들이 분해하지 않으면 그대로 쌓여서 산에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다. 박테리아들은 스스로 성장한다. 대장균은 20분에 두 배로 늘어난다. 그럼 이놈들의 천적이 있을까.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놈들이 며칠 새 지구를 덮어버릴 수도 있다. 다행히 지구는 스스로 조절하는 완벽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박테리아의 천적은 박테리아 파지(Bactriophage:파지)다. 이놈들은 박테리아만 공격하는 바이러스다. 즉 박테리아 전문 킬러다. 이놈들 싸움은 싸움 구경 중 최고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어떻게 파지가 박테리아의 견고한 성을 뚫고 들어가 수를 불려 터트려 나오는지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다. 이걸 실험실에서 뚫어지게 쳐다보던 두 여성 과학자, 미국의 두드나 교수와 독일의 카펜터 박사가 무릎을 쳤다. 2011년 푸에토리코 학회에서 만난 두 과학자는 학회장 옆 해변을 두 시간 걸으며 어떻게 이걸 응용할까 이야기를 했다. 9년 뒤 두 사람은 나란히 노벨상 수상대에 섰다. 파지의 공격을 막아내는 박테리아 방어작용을 모방한 ‘초정밀 유전자가위 기술’ (CRISPR/Cas9)이 탄생한 순간이다. 노벨상을 안겨준 싸움을 다시 들여다보자.
박테리아는 천적인 바이러스를 방어하는 면역이 있다.
개미와 사마귀의 싸움에서 누가 유리할까. 새까맣게 달라붙는 개미를 사마귀가 막기는 힘들어 보인다. 고사성어도 있다. ‘당량거철(螳螂拒轍)’, 즉 사마귀(螳螂)가 앞발로 수레바퀴를 가로막는다(拒轍)‘라는 고사성어처럼 사마귀는 수레처럼 밀려오는 개미에 속절없이 당할 것 같다. 하지만 개미와 사마귀가 천적이란 말은 싸움이 일방적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장군멍군 식으로 계속 주고받으면서 싸움이 계속된다. 계속되는 두뇌 싸움 덕에 양쪽은 공진화(Co-evolution)한다. ‘싸우면서 서로 큰다’라는 이야기다. 박테리아와 파지도 싸움 덕에 공진화한다. 바다, 강, 사람의 대장 등 박테리아가 사는 곳에는 약 10배 정도의 킬러 바이러스, 즉 파지가 살고 있다. 따라서 이 비율이 유지되는 것이 파지생존에 중요하다. 무조건 죽여버리면 파지 생존 자체가 위험해진다. 먹을 것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먹을 박테리아가 많으면 죽이고, 박테리아가 줄어들면 기다린다. 즉 파지는 박테리아와의 비율을 고려할 정도로 똑똑하다.
그럼 박테리아는 무슨 전략으로 파지의 공격을 막을까. 간단하다. 면역이다, 즉 한번 침입했던 파지를 기억했다가 다음에 똑같은 놈이 들어오면 사정없이 잘라버리는 박테리아의 면역을 모방한 것이 2020년 노벨상이다. 100마리가 줄을 서야 머리카락 굵기가 되는 놈들이 한번 침입해 들어온 파지를 기억했다가 재침입 때 기억을 살려 즉각 조각내 버린다니 그 정교함에 혀가 내둘러진다. 그 정교한 기억-확인-절단 방어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해서 ’초정밀 유전자 가위기술‘(CRISPR/cas9)이 만들어졌다. 노벨상 기술을 좀 더 들여다보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요구르트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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